어릴 때 연일 집으로 글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과 멀리 전국 각지에서 공부하러 오는 문하생들을 보면서 할아버지 추연 선생은 한문을 참 잘하시는 분이구나 생각했고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는데 당신께서 돌아기신 후 많은 문상객들과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참으로 예사분이 아니셨구나 하는 생각을 또한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어느 정도 막연했던 것이고 구체적으로 깊은 존경의 念을 가지게 된 것은 그분이 남기신 문집을 대하고부터입니다.
수년 전 어느 날 저녁 집에서 무료히 있다 제가 군에 가기 전 틈틈이 배운 얕은 한문실력으로 할아버지의 문빕을 들춰본 적이 있는데 거기 실려있는 집안의 종손이면서 저의 사촌큰형인 증상()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보니 쉬운 문장이어서인지 어느 정도 내용이 보였습니다.
그 후 모르는 것을 단국에 계신 할아버지의 문하생 김재열 선생에게 물어가며 해독해보니 그저 한문을 잘 하는 노인네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도 손자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명문중의 명문(名文)임을 알고 사실 많이 놀랬습니다.
저 역시 일반 교양서적을 포함해서 문학,역사,철학서를 어느 정도 읽어는 보았기 때문에 한문으로 표현된 문장이지만 옥석을 가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욕심을 내 쉽게 들어오는 몇 편의 문자을 뽑아 더 알려고 노력하였는데 그것이 이 책에 실려있는 기자순의(寄子淳義),남군추봉묘갈명(南君秋峰墓碣銘)등의 글입니다. 그리고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저와 주변 친척들이 이제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을 추연할아버지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욕심을 낸 것이 오늘날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입니다.
사실 주변의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저는 식견이나 한문수업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추연할아버지의 문하생들께 도움을 청하였고 심지어 그 분들의 논문이나 기존 번역문을 통채로 가져온 것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기까지 작은 형(甲相)의 도움도 크게 받았습니다. 이 번역서에 만약 잘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그 분들 공이지만 잘못된 부분은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 때문임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라 책의 체계라든가, 이론이 있는 부분, 그리고 문장을 다듬는 윤문은 제 주관으로 한 것이 많아 그 분들 책임으로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 첫째 이유가 어설픈 번역으로 오히려 원문을 훼손시켜 추연할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려면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는 조바심과 어슬프게라도 시작을 해 놓으면 이것이 계기가 되고 발판이 되어 앞으로 더욱 나은 번역서와 연구서들이 나오는 기틀이 될 수 있다는, 한 편에서의 위로와 기대에 용기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편집하면서 단락을 나누어 원문을 앞에 두고 그 뒤에 번역문을 실은 것은, 독자들이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가며 읽어 졸역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려는 고육책에서입니다. 그러니 좀 불편하셔도 가급적 번역문을 원문과 대조해가며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추연 할아버지의 방대한 문집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 100분의 1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에 발문(跋文) 기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대개의 선역서(選譯書)는 객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선정하는 대표문선집이 일반적이고 서한(書翰), 시(詩) 혹은 어떤 목적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을 고릅니다.하지만 이 책은 그저 평소에 읽고 싶었던 글, 예를 들어 뵙지 못한 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 관련 글 또는 고향 합천의 관련 유적지에 관한 글 등 순전히 저의 기호에 따라서, 말하자면 무원칙하게 골랐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지 못하였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東洋學 硏究所) 허호구(許鎬九)교수, 김재열(金在烈) 선생, 전주대학교 박완식(朴浣植)교수 민추(民推) 연수원 강사로 계시는 조성원(趙盛元)선생과 합천 유림의 큰 어른이신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님, 이 분들이 바쁘신 중에 초벌번역을 녹음해 주기도 하였고 교열 교정 작업을 해주시며 크게 도와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제자(題字)를 써주신 합천 직암서실(直菴書室)의 직암 이수희(李銖熹)선생, 추천사를 써 주신 합천군수 심의조(沈義祚)님, 합천문화원장 권병석(權丙錫)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출판을 맡아주신 합천지역 언론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황강신문사 김병화 사장과 인쇄와 디자인을 위해 애써주신 서경문화사 사장, 학교동창이면서 친한친구이기도 한 합천인공수정소 이선택(李善澤)과 지난 날 추연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공부했던 인연을 잊지않고 합천농협에 근무하면서 바쁜 중에 틈틈이 들러 조언을 아끼지 않은 남주현(南朱鉉)형,
이 책에 실린 사진을 준비함에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신 초계제일사진관 이상열(李相烈)사장, 편집과 역문교정을 꼼꼼하게 봐주신 김신혜 선생과 이건희(李建熙)군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이 책이 마무리되기까지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형들 그리고 창녕고모….그 외에도 많은 분의 격려와 도움을 받았지만 일일이 다 말씀드리지 못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